미래로부터 오는 지혜, 잠든 교회를 깨우다

 본문: 야고보서 3:13-18

1. 예언자적-역사적 진단

오늘날 현대 교회는 위기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는 세상이 교회를 핍박하기 때문이거나 교인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진정한 위기는 교회가 세상의 지혜, 즉 '효율성'과 '성공주의'라는 우상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넘긴 채,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성장을 위해 경영학적 전략을 배우고, 영향력을 위해 정치적 힘을 탐하며, 신앙의 감동을 위해 심리학적 기술을 동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야고보서가 지적하는 '땅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인 지혜입니다. 이 지혜가 지배하는 교회는 시기와 다툼, 혼란과 악한 일이 가득할 뿐, 생명을 낳지 못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추상적인 교리나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으로 전락하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의 성공 논리로 대체된 역사적 상황입니다. 그러나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통찰처럼, 하나님의 계시는 바로 '역사' 그 자체를 통해, 특히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이 죽음의 상황을 돌파할 열쇠는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로서의 계시', 즉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담긴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회복하는 데 있습니다.

2. '그리스도 사건'의 역사성 변증

야고보서 3장 17절은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선언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단순히 우리가 따라야 할 윤리적 덕목의 목록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덕 교과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그리스도 사건(Christ-Event)'의 성격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의 완전한 육화(肉化)는 바로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입니다. 그의 삶은 성결했고, 그의 가르침은 화평을 가져왔으며, 그는 죄인들에게 관용하고 양순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는 세상의 지혜, 즉 힘과 자기보존의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한, 긍휼과 자기희생의 정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지혜를 죽음 속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사건인 '부활'을 통해 그것이 바로 모든 역사를 심판하고 완성할 하나님의 참된 지혜임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지혜를 따른다는 것은, 감상적인 다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신 이 새로운 역사적 실재(reality)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3. 공적-성례전적 개입

이 위로부터 난 지혜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공적 책임'**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가 이념 갈등, 경제적 착취, 인종적 차별을 낳는 모든 정치, 경제, 학문의 영역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혜를 가지고 '개입'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방식대로 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방식으로 섬기고, 화평을 만들며, 약한 자의 편에 서서 불의한 구조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주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를이 땅의 역사 속에서 증언하는 교회의 공적 사명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 거대한 사명을 우리의 힘만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의 성례전적 삶'**이 필수적인 이유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세상의 지혜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연합하여 그의 역사적 몸의 일부가 됩니다. 우리가 성만찬의 떡과 잔을 나눌 때, 우리는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을 받아먹음으로써, 그 '위로부터 난 지혜'를 공급받고 세상 속으로 파송받는 공동체로 새롭게 세워집니다. 성례전은 단순한 기념 의식이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의 역사에 참여시켜 공적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실제적 행위입니다.

4. 지성적 결단을 위한 질문

이제 우리는 안일한 신앙을 넘어 지성적으로 정직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오늘 설교의 핵심 논증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으십시오.

"나의 삶과 우리 교회의 존립 근거는, 눈에 보이는 성공과 효율성을 약속하는 '세상의 역사'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의 죽음을 뚫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역사의 미래를 결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입니까?"

5. '오시는 이'에 근거한 현재적 희망

우리의 희망은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거짓 지혜의 무덤을 넘어, 지금 우리의 미래로부터 우리를 향해 '오시는 이(The Coming One)', 바로 부활하신 주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바로 그 '도적같이 임하는' 그리스도의 미래가, 세상의 지혜에 취해 잠든 우리의 현재를 깨우고 진정한 평화의 열매를 맺게 하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댓글